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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50대 후반이 될 때까지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월급이 들어오면 부동산에 묻고, 집사람의 개인사업 수익으로 생활을 메우면서 "뭐, 어떻게 되겠지"라는 안일함으로 버텼습니다. 그런데 은퇴가 3년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수중에 현금 2억 원을 쥐고서야 처음으로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제가 이제껏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걱정만 해왔는지, 그 계산 결과가 꽤 의외였습니다.

종잣돈 2억, 출발선이 바뀌면 숫자가 이렇게 달라집니다
일반적으로 노후에 5억이 필요하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 5억을 맨손으로 긁어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10년, 120개월로 단순히 나누면 매달 416만 원이라는 숫자가 나오고, 그 순간 '이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바로 직행했습니다.
그런데 제 경우엔 출발선이 달랐습니다. 부동산에 올인해온 탓에 유동성은 낮지만, 그래도 현금으로 굴릴 수 있는 자산이 약 2억 원 정도 됩니다. 이 2억 원을 연 7%로 운용한다고 가정하면, 10년 뒤 5억에 도달하기 위해 매달 추가로 납입해야 하는 금액이 56만 원으로 뚝 떨어집니다. 하루로 환산하면 약 1만 9천 원 수준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소득 크레바스(income crevasse)라는 개념입니다. 소득 크레바스란, 주된 직장에서 밀려난 시점과 국민연금 수령 시점 사이에 생기는 소득 공백 구간을 말합니다. 출처: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주된 일자리에서 실제로 떠나는 나이는 평균 51~52세 수준입니다. 1969년 이후 출생자는 국민연금이 만 65세부터 지급되므로, 이 공백이 13년에 달합니다. 저는 60세 정년 이후에도 약 5년의 공백이 생깁니다. 이 5년이 지금 제게 가장 무서운 구간입니다.
0원에서 시작하는 사람과 2억을 들고 출발하는 사람이 같은 5억을 목표로 달려갈 때, 매달 부담의 차이는 289만 원 대 56만 원입니다. 출발선 하나가 이렇게 세상을 갈라놓습니다.
- 종잣돈 0원 출발 + 연 7% 운용 → 매달 289만 원 납입 필요
- 종잣돈 1억 출발 + 연 7% 운용 → 매달 172만 원 납입 필요
- 종잣돈 2억 출발 + 연 7% 운용 → 매달 56만 원 납입 필요
- 종잣돈 2억 출발 + 연 5% 운용 → 매달 110만 원 납입 필요
복리가 등 뒤에서 미는 바람이라는 걸, 바이오 주식 손실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실수한 부분이 있었는데, 2억 원이라는 현금을 그냥 묵혀두면서도 복리의 힘을 전혀 체감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몇 년 전 바이오 주식에 뭉칫돈을 넣었다가 뼈아픈 손실을 경험한 뒤로, 저는 '투자=위험'이라는 등식을 머릿속에 박아 두었습니다. 그 트라우마가 2억을 그냥 정기예금에 눕혀두게 만들었습니다.
복리(compound interest)란 원금에서 발생한 이자가 다시 원금에 합산되어 그 다음 기간에 또 이자를 낳는 구조입니다. 쉽게 말해 돈이 잠을 자는 동안에도 혼자 산을 오르는 구조입니다. 2억 원을 연 7%로 10년간 굴리면 손 하나 대지 않아도 약 3억 9천만 원 근처까지 불어납니다. 정상의 팔 할을 종잣돈이 혼자 올라가 있는 셈입니다.
반대로 이 힘을 5년 미루면 어떻게 되는지도 계산해봤습니다. 5년 뒤에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면 남은 기간이 절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매달 납입액이 두 배 가까이 뛰어오릅니다. 시간을 아꼈다고 생각한 5년이 사실은 매달 부담을 두 배로 만드는 벌금이었던 겁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저는 바이오 주식 손실의 진짜 교훈을 다시 읽었습니다. 문제는 투자 자체가 아니라 한 방을 노리는 접근이었습니다. 조급함이 등산로를 벗어나 절벽으로 내달리게 만든 겁니다. 일반적으로 10%대 고수익을 기대하고 계획을 세우는 경우가 많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월가의 일부 전략가들조차 향후 10년의 수익률은 과거보다 낮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 5~7%라는 보수적인 수치로만 계산을 다시 잡았습니다.
연금계좌 세액공제, 써보기 전엔 이게 이렇게 강력한지 몰랐습니다
주변 친구들이 개인연금을 미리 준비해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저는 한동안 "어차피 국민연금 120만 원 나오는 거 아니냐"는 생각으로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연금저축(pension savings account)은 세액공제 혜택이 붙는 노후 전용 투자계좌입니다. 여기서 세액공제란 납입액의 일부를 납부해야 할 세금에서 직접 깎아주는 제도로, 단순히 소득에서 빼주는 소득공제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현행 제도 기준으로 연금저축과 IRP(개인형퇴직연금)를 합산해 연간 900만 원 한도 내에서 납입하면, 연말정산 때 최대 148만 원 안팎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100만 원을 넣으면 16만 원 이상을 나라가 도로 꽂아준다는 뜻입니다. 출처: 국세청
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 즉 개인형퇴직연금은 연금저축보다 인출 조건이 까다롭지만 담을 수 있는 한도가 더 큽니다. 보통은 연금저축에 600만 원, IRP에 300만 원을 얹어 합산 900만 원을 채우는 조합을 많이 씁니다. 제 경우에도 이 조합으로 접근할 계획입니다.
더 중요한 건 계좌 안에서 수익이 날 때 세금을 즉시 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과세이연(tax deferral)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연금으로 꺼낼 때까지 세금을 뒤로 미뤄주는 구조입니다. 그 밀린 세금까지 복리로 굴러가니까 일반 위탁계좌에서 같은 상품에 투자한 것과 10년, 20년 뒤 결과가 눈에 띄게 벌어집니다. 제가 직접 시뮬레이션해봤는데, 같은 금액을 연금저축 안에서 굴렸을 때와 일반 통장에서 굴렸을 때 10년 차 잔액 차이가 생각보다 상당했습니다.
집사람도 소득이 있는 만큼 각자 계좌를 별도로 운용하면 이 세제 혜택을 두 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이번에 새로 알았습니다. 같은 산을 짐꾼 두 명이 함께 오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50대 후반에 연금저축을 처음 시작해도 의미가 있나요?
A. 늦었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은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50대는 오히려 자녀 교육비 같은 큰 지출이 줄어들면서 실제로 납입 여력이 가장 크게 열리는 시기입니다. 세액공제 혜택은 납입 시점부터 즉시 작동하므로, 3년이라는 기간도 결코 짧지 않습니다. 안 하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는 3년 뒤에 분명히 갈립니다.
Q. 연금저축과 IRP 중에 어디에 먼저 넣어야 하나요?
A. 일반적으로 연금저축을 600만 원 채운 뒤 IRP에 300만 원을 더 얹어 합산 900만 원을 만드는 방식이 많이 쓰입니다. 연금저축은 중간에 일부 인출이 비교적 수월하고 투자 상품 선택 폭이 넓은 반면, IRP는 인출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유동성이 걱정된다면 연금저축부터 채우는 게 현실적입니다.
Q. 연금저축 안에서 ETF를 사면 일반 계좌와 뭐가 다른가요?
A. 가장 큰 차이는 과세이연입니다. 일반 계좌에서는 수익이 날 때마다 세금이 빠져나가지만, 연금저축 안에서는 그 세금이 연금 수령 시점까지 미뤄집니다. 그 밀린 세금까지 계속 복리로 굴러가기 때문에, 같은 ETF에 같은 금액을 넣어도 10년 이상 지나면 잔액 차이가 눈에 띄게 벌어집니다.
Q. 월세 수입이 있으면 연금저축 납입에 영향이 있나요?
A. 월세 수입은 사업소득 또는 기타소득으로 잡히는 경우가 많아, 연금저축·IRP 세액공제를 적용받는 종합소득세 신고와 함께 계산해야 합니다. 소득 구간에 따라 공제율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실제 납입 전 세무사나 금융기관 창구에서 본인 소득 기준으로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결론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5억이라는 숫자를 안개 속 정상처럼 올려다보기만 했습니다. 바이오 주식 손실 이후엔 투자 자체를 두려워했고, 부동산에 모든 걸 묻으면서 '현금 굴리기'를 미뤄왔습니다. 그런데 계산기를 처음 제대로 두드린 날, 제가 이미 2억이라는 상당한 베이스캠프 위에 서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종잣돈이라는 출발 고도, 복리라는 등 뒤의 바람, 연금계좌의 세액공제라는 셰르파.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쓰면 매달 56만 원이라는 현실적인 숫자로 10년 안에 5억 근처에 닿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물론 수익률 가정이 빗나갈 수 있고 세법도 바뀔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의 숫자는 방향을 잡는 지도일 뿐, 실제 납입 전에 그 시점의 최신 제도를 반드시 다시 확인하셔야 합니다.
제가 앞으로 할 일은 단순합니다. 남은 3년간 연금저축과 IRP에 우량 ETF를 꾸준히 모으고, 월급이 들어오는 날 자동이체로 먼저 빠져나가게 묶어두는 것. 대박을 좇는 게 아니라 안 굴러 떨어지고 끝까지 오르는 것. 제가 이제야 등산화 끈을 묶었습니다.